한창 절정에 오른 TV드라마 ‘왕과 비’의 주인공 성종·연산군·중종. 모두 서울에 누워 있다. 41면 사진은 중종릉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능 언덕에 올라 남쪽을 보면 왼쪽에 55층짜리 무역센터 빌딩이, 조금 오른쪽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보인다.
사방 어느 쪽을 바라봐도 크고 작은 빌딩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서울하고도 강남, 강남에서도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삼성동 금싸라기 땅에 중종대왕께서 잠들어 계신다. 이름하여 정릉.

“형님(연산군)이 나를 죽일 겁니다.”

텔레비젼 사극 ‘왕과 비’에서 벌벌 떨며 우는 어린아이 진성대군. 곧 형님을 쫓아내고 만인지상 자리에 오른다. 그가 중종대왕이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8번출구로 나가 왼쪽 하나은행 골목으로 들어간다. 선정릉이다. 선릉과 정릉을 함께 부른다.
선릉엔 중종의 부모인 성종과 정현왕후가 묻혀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강남 도심 한가운데 7만3000평 녹지가 보존됐다.
다행인가? 아니면 빌딩 숲 속에 갇힌 왕릉이 안타까운가.
 지금은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와 먹기도 하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새벽엔 배드민턴, 기공동호회 회원들이 운동을 한다. 선정릉지구관리소 (02)568-1291.

채시라가 연기하는 인수대비는 며느리이자 연산군의 친어머니 윤씨를 폐했다. 하지만 손자의 왕위 등극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아들은 사약을 먹고 죽은 어머니 원수를 갚다가 도가 지나쳤다.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받아 죽였다. 성종의 후궁들을 때려 죽였다.
대신 한명회·정여창을 관에서 꺼내 시신을 토막냈다. 결과는 중종반정. 강화도에 유배돼 사약을 마셨다.
조선왕조 최초로 왕좌에서 폐위된 사내. 어디에 누워 있을까.

우편번호 132-020 서울 도봉구 방학동 산75번지. 1512년(중종7년) 부인 신씨의 애원에 강화도에서 이곳으로 이장했다.
왕으로 죽지 못했기에 능이 아니라 묘다. 버스 333번은 ‘연산군묘’ 정류장에 선다. 안내판은 없다.
방학동 사거리에서 우이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끄트머리다.
신동아아파트쪽 골목으로 20여 들어가면 어른 5~6명이 팔을 벌려 맞잡아야 감쌀 수 있는 큰 은행나무가 시야를 덮친다. 800년된 보호수다. 그 앞이다.

"전주이씨 종친회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제사를 지냈어요.” 대대로 묘를 관리해 온 홍문옥(53)씨의 말이다.
홍씨 아버지는 일제시대 이왕직에서 능참봉으로 일했다 한다. 홍씨 가족은 광무7년(1904년) 중건된 연산군 재실에 산다.
재실이 워낙 초라해 이 집에 들어와 “재실을 찾는데요” 하는 사람도 있다.

봉분은 한때 왕이었음을 생각하면 너무 초라하다.
선정릉이 봉분에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기단(병풍석)을 두른 것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 없이 봉분만 봉긋하다.
부인 신씨 묘와 나란히 있는 묘 비석엔 ‘연산군지묘’라는 글자만 쓸쓸하게 써 있다. 지난 가을 낙엽이 여직 수북하다.
비공개. 하긴 찾아 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굳이 그 모습이 궁금하다면 인근 신동아아파트 옥상에 오를 일이다. 태강릉지구관리소 (02)972-0370.
연산군은 그리운 어머니를 저승에선 만났는지?
그가 애타게 그리던 어머니 폐비 윤씨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서삼릉 지역에 회묘란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아들은 ‘능’이라 했지만 후대에 묘로 격하됐다. 역시 아들처럼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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