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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알레르기 질환

김유영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아무리 애를 써도 어렸을 때 ‘알레르기’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기억력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알레르기 질환’이란 말을 분명하게 들은 건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교관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 후반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같은 과 교수 한 분이 “미국 유학가서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겼는데, 꽃가루만 날리면 콧물이 줄줄 흐른다”는 얘길 듣고 “참 희한한 병도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만 해도 의학-건강 분야 지식은 그야말로 ‘빵점’이어서 알레르기란 단어가 생소하게 들렸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알레르기란 단어가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알레르기란 말은 그 사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가 됐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알레르기 환자들이다. 알레르기 천식,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피부질환, 음식물 알레르기, 약물 알레르기, 곤충 알레르기 ...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갑자기 ‘알레르기 천지’가 된 것일까?
 
▲ 김유영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먼저 알레르기란 말의 정의부터 내려 보자. 알레르기란 인체 면역체계가 외부 물질에 대해 일종의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써 염증, 발작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애완동물의 털이나 비듬, 화학물질 등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알레르겐’이라 한다. 알레르겐에 처음 접촉했을 때는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지만, 자꾸 접촉하다 보면 여기에 대항하는 항체가 형성되며, 이 항체와 알레르겐이 만나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조직에 염증과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기침이나 콧물을 흘릴 때 의사들은 흔히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는데, 체내 항체와 알레르겐이 만났을 때 분비되는 물질이 히스타민이다. 알레르기 반응의 주범은 바로 이 히스타민인데, 항히스타민제는 히스타민의 알레르기 반응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알레르기 질환의 폭증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은 최근 20여년간 7~8배 정도 알레르기 질환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으며, 우리나라도 3배 정도 알레르기 환자가 늘었다. 김유영 교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아의 알레르기 천식 유병률(有病率)은 1980년 5.6%, 1990년 10.1%, 1997년 14.5%다.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도대체 난데없이 알레르기 질환이 서너배 이상씩 폭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첫째, 위생상태의 개선이다. 인체는 체내로 침투하는 세균과 싸우기 위해 면역체계란 정예군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세균 감염이 줄어 들게 되자, 할 일이 없어진 면역체계가 변화를 일으켜, 병원체도 아닌 알레르겐과 엉뚱하게 맞서 싸운다는 설명이다.

둘째, 주거 환경의 변화다. 태평양 파푸아뉴기니섬 고산지대 원주민은 알레르기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나무로 얼기 설기 지은 집에서 살던 그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식 건축재료를 사용해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년쯤 뒤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을 앓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 친화적인 원주민들의 주거공간에 ‘인공’이 침투하면서 알레르기 질환이 시작됐다는 게 서구 의학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알레르기 환자 폭증도 아파트의 보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겨울에도 속 옷만 입고 지낼 정도로 난방을 하게 됐고, 이 때문에 사람만 살기 좋아진 게 아니라 집먼지 진드기 등 알레르겐도 서식하기 좋아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알레르기 유발 물질, 즉 알레르겐의 등장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것 가운데 자연이 거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실만 해도 천장은 석고보드, 벽은 페인트를 칠했다. 책상, 의자, 컴퓨터, 냉장고 등 모든 가구에 프라스틱 소재가 사용됐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도 방부제, 산화방지제, 인공감미료, 식용색소 등 각종 식품 첨가물이 들어 있다. 질병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 많은 약들도 과거에는 없던 것들이다. 수천년, 수만년간 자연에 익숙해 있던 사람의 면역체계는 갑자기 등장한 ‘인공’을 적군으로 알고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넷째, 농약의 대량 살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이 기계화-대량화 되면서 농약을 대량 살포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농작물의 병충해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병충해를 일으키는 곤충이 사라지는 바람에 먹이사슬이 깨어졌고, 이 곤충이 먹고 살던 벌레가 크게 번성하게 돼, 이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 사과, 포도 과수원에 가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농약 사용으로 곤충이 사라지자 곤충의 먹이가 됐던 ‘잎응애’란 작은 벌레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기오염의 악화이다. 공장 굴뚝 연기속의 아황산가스, 자동차 배기가스 속의 이산화질소, 그리고 질소화합물이 햇빛과 만나 생기는 오존 등은 천식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증상도 악화시킨다.

여섯째, 흡연 인구의 증가다. 담배 속의 여러 화학물질은 알레르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흡연자가 천식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보다 5배나 높으며, 특히 임신부가 흡연할 경우 태아가 알레르기 체질이 되기 쉽다. 영유아기의 간접흡연도 알레르기 체질이 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피하는 것이다. 알레르기 질환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므로 맞서 싸우려 들지 말고 ‘줄행랑’ 치는 게 최고라는 것인데, 의사들은 이를 ‘회피요법’이라 한다.

회피 요법의 핵심은 어떤 물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병원에선 ‘알레르기 유발 검사(또는 피부단자검사)’를 한다. 이는 가장 흔하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 수십가지를 주사기나 바늘로 환자의 등이나 팔에 극미량 침투시킨 뒤, 어떤 물질을 침투시킨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지를 관찰하는 방법이다. 검사 결과, 예를 들어 집먼지 진드기와 향수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되면, 환자는 향수 사용을 중지하고, 집먼지 진드기가 서식하는 카펫이나 침구류 등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 환자의 주거 또는 생활 공간에만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라면, 통상적인 병원의 알레르기 유발 검사로는 원인 물질을 찾아낼 수 없다. 이 때는 환자의 집이나 직장 등을 의료진이 방문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수거하고, 이 물질을 시약(試藥)으로 만들어서 재차 알레르기 유발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적’을 아는 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두 번 째 대처방법은 약물요법이다. 약물요법은 예를 들어 콧물, 코막힘, 기침, 호흡곤란 등 알레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對症療法)’과 알레르기 염증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증상의 발작을 예방하는 ‘예방요법’이 있다. 알레르겐을 100% 차단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환자는 약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부분의 알레르기 환자는 회피요법과 약물요법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조절해 가며 큰 불편없이 살 수 있다.

세번째는 면역요법이다. 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아주 조금씩 아주 오랜 기간 피하(皮下)에 조금씩 주사함으로써, 환자가 그 물질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면역요법은 초기 치료와 유지 치료의 두 단계로 나뉜다. 초기 치료란 환자가 특정 알레르겐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할 때까지 1주일에 1~2회 정도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는 것이다. 이 때 주사의 양과 주사 맞는 횟수는 차츰 증가하게 된다. 초기 치료 결과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그 다음은 유지 치료로 넘어가게 된다. 환자는 최소 3년 이상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아서 체질이 다시는 바뀌지 않도록 치료효과를 유지 시켜야 한다.

면역요법은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유일한 완치법이며, 치료 성공률도 꽃가루나 집먼지 진드기가 원인일 경우 70~80%로 아주 높다. 그러나 3년 이상 꾸준히 병원을 다녀야 한다는 점과, 증상이 좋아졌다고 중간에 치료를 그만두면 재발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게 단점이다. 면역체계가 미숙한 5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에겐 이 요법을 시행할 수 없으며, 심장병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도 이 요법을 시행하지 않는다.

한편 체질을 바꾸는 면역요법을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건강보조식품 업자 등이 ‘체질이 산성이면 알레르기가 생기므로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광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정 음식이나 물질이 체질을 알칼리로 만들어 알레르기 질환을 완치한다며 환자들을 꼬드기고 있다.

그러나 산성체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얘기는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인간의 체액 산성도는 pH 7.4 정도로 약 알칼리 상태며, 알레르기 환자든 아니든 산성도는 모두 동일하다. 만약 어떤 사람의 체액 산성도가 pH 7.4에서 벗어난다면 쇼크 등이 일어나 생명이 위험해 진다.

재차 강조하지만 알레르기 질환은 체질 산성도와 무관하며,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의사는 병을 완치하려면 3년 이상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건강보조식품 업자 등은 이 약만 먹으면 금방 병이 낫는다고 말한다. “어렵다”는 의사 보다 “쉽다”는 업자 말에 귀가 더 솔깃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환자의 돈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알레르기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은 기관지 천식이다. 성인이 된 뒤 시작된 천식은 찬 공기, 운동, 담배, 스트레스, 불안감 등이 원인으로 알레르기와 무관한 경우도 있지만, 소아기에 나타나는 천식은 알레르기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어른은 20명 중 1명, 어린이는 7명 중 1명이 천식을 경험한다. 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 어린이 천식 유병률은 14.5%였으며,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기관지 천식이 있으면 환자에겐 가랑가랑 또는 쌕쌕하는 숨소리, 호흡 곤란, 발작적인 기침 등 세가지 특징적 증상이 나타난다. 이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관지 근육이 갑자기 수축돼 좁아지고, 기관지 점막이 부어 오르면서 염증이 생기고, 점액이 많이 분비돼 가는 기관지(세기관지)가 막히기 때문이다. 때로는 3가지 증상 중 두가지 또는 한가지 증상만 나타나는 비 전형적 천식도 있다.

물론 기관지 천식은 잘못 대처하면 사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병이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천식 발작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더군다나 규칙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사람에겐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들은 첫째 천식 발작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 같은 상황을 회피하도록 애를 써야 하며, 둘째 평소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 알레르기성 천식은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바퀴벌레, 애완동물 털이나 분비물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 밖에 담배 연기, 음식 조리 연기, 페인트 칠 냄새, 살충제, 향수, 찬 공기, 저기압, 대기오염 등이 천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천식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수축된 기관지를 강제로 확장시켜 주는 약, 기관지 염증을 가라 앉히는 약, 알레르기 반응을 줄여 주는 약 등이 있다. 천식약은 발작시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항염증제나 항알레르기제로 꾸준히 치료받으면 영구적으로 폐기능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 심한 천식 환자는 천식 발작에 대비해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흡입제를 반드시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천식은 만성적인 질환으로 재발이 매우 잦다. 평소 증상이 잘 조절되다가도 갑자기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회피요법과 약물요법을 적절히 시행하며, 필요하다면 힘들지만 면역치료도 받아야 한다. 천식은 의사와 환자가 파트너가 돼 함께 증상을 조절해 가는 병이다. 증상이 좋아졌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다간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천식 못지않게 흔한 알레르기 질환으로 비염이 있다. 비염은 코와 인후두부 점막에 염증이 생겨 재채기, 콧물, 코막힘, 코 가려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때때로 목, 눈, 귀 근처까지 가려울 수도 있다. 주로 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사람에 따라 유아기나 성인이 된 뒤 발병할 수도 있다. 비염 증상이 꽃가루가 날리는 특정 계절에만 나타나느냐, 일년 내내 나타나느냐에 따라 ‘계절성’과 ‘통년성’으로 구분한다.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은 일반적으로 나무, 꽃, 잔디, 잡초 등의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2월말경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해 5월까지 지속된다. 참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개암나무, 너도밤나무, 포플러나무 등 풍매화들이 주로 문제가 된다. 잔디, 목장의 풀, 곡식의 꽃가루는 여름철에 날리고, 쑥과 같은 잡초의 꽃가루는 8월말부터 10월 초까지 주로 날린다. 꽃가루 알레르기 중에선 쑥 꽃가루가 가장 흔한 원인이다. 진달래나 개나리 처럼 벌레가 꽃씨를 옮기는 충매화의 꽃가루는 크고 무거워서 공기중에 잘 날리지 않으므로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흔히 봄철에 하늘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흰 솜털 같은 것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꽃가루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솜털 같은 것은 꽃가루가 아니라 꽃씨이며, 알레르기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한편 풍매화의 꽃가루는 바람을 타고 수백킬로미터씩 이동하므로 집 주위에 산이나 나무가 없더라도 안심해서는 안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원인이 꽃가루인 경우 꽃가루를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창문을 닫아 꽃가루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외출시엔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그러나 꽃가루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 분무제, 충혈완화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적절히 사용해 증상을 조절하는 수 밖에 없다.

통년성 알레르기 비염은 집먼지 진드기, 애완동물의 털-비듬-분비물, 깃털, 곰팡이, 곤충, 음식 등 천식을 일으키는 물질과 비슷하다. 역시 회피요법, 약물요법, 면역요법 외엔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증상이 완화시키는 약물은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과 동일하다.

음식 등을 먹은 뒤 갑자기 피부가 희고 붉게 부풀어 오르며 몹시 가려운 두드러기는 대표적인 알레르기 피부질환이다. 약물, 식물, 곤충 등이 두드러기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음식이다. 견과류, 그 중에서도 땅콩이 가장 흔하게 두드러기를 일으키며, 몇몇 해산물과 딸기, 계란 등도 두드러기를 일으킨다. 음식물이 알레르기를 일으킨 경우엔 두드러기 같은 피부 증상 뿐 아니라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눈꺼풀, 입술, 성대 주변이 갑자기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혈관부종은 매우 치명적인 알레르기 질환이다. 이것이 기도에 생기면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때로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혈관부종이 생긴 경우엔 응급용 에피네프린을 주사하는 등 신속히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은 견과류, 해산물, 딸기 같은 음식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으며, 항생제 등 약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때로는 곤충에 물려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아토피성 피부염도 넓은 의미에서 알레르기 질환에 포함시킨다. ‘아토피’란 상도(常道)를 벗어난 이상한 질환을 의미한다. 발병 원인이 정확히 밝혀져 있진 않지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해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는 선천적으로 가려움증을 잘 느끼는 피부를 갖고 있으며,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해서 피부가 가렵게 되고, 그 때문에 이차적으로 습진이 생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70% 정도는 가족력(家族歷)이 있으며, 절반 정도는 알레르기 천식이나 비염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알레르기 유발 검사를 해 보면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도 집먼지 진드기 등의 알레르겐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토피성 피부염이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다른 점은 피부염의 발병에 알레르겐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의사들이 땅콩 등 견과류, 생선류, 조개, 달걀, 우유 등을 삼가하라고 권하지만, 특정 음식이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는 한 음식을 가릴 필요는 없다.

“거지는 아토피 피부염이 없다”며 목욕을 금하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물론 공중 목욕탕에 다녀와서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목욕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공중 목욕탕의 뜨거운 목욕물이나 때밀이 타월 등이 피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온 정도의 따뜻한 물로 1~2일에 한번씩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피부가 건조해 지면 증상이 심해지므로, 샤워 뒤엔 보습제 등을 발라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달리 아토피성 피부염은 회피요법이나 면역요법을 하지 않는다. 항히스타민제 등 약물을 적절히 사용해 피부염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 특히 아토피성 피부염은 피부를 긁어서 문제가 되는 병이므로, 가려워도 절대 긁지 말아야 한다. 난치병일수록 ‘비방( 方)’이 많은데, 특효가 있다고 선전하는 각종 광고에 귀를 막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병은 나이가 들면서 낫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괴롭더라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증상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

김유영 교수는

서울대병원 알레르기 내과 김유영 교수는 그리 싹싹한 편이 아니다. 보기에 따라 그의 말투와 행동이 약간은 권위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환자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그는 수년전 직업성 천식으로 숨진 환자의 이름과 가족까지 기억하고, 아직도 가슴아파 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한 후배 교수는 “밖으로 잘 표현하진 않지만 환자에 대해선 깊은 연민의 정이 있는 분”이라며 “어머니처럼 자상하진 않지만 아버지처럼 방향과 중심을 잘 잡아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1945년생인 김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영국 사우드햄튼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지냈다. 2년동안 충남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뒤 1980년부터 지금껏 서울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국내 알레르기학의 대명사다. 그의 스승인 강석영 전 서울의대 교수가 알레르기학을 최초로 도입했다면 김 교수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육성·발전시켜 꽃을 피웠다. 1979년 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알레르기 클리닉을 개설했고, 이듬해인 1980년엔 알레르기 내과를 개설했다. 이를 토대로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의 한국적 진단·치료지침 마련에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특히 감귤, 사과, 배 나무에 사는 ‘잎 응애’란 작은 벌레가 천식이나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과 염색체 11번에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인자가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함으로써 국제 학계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999년부터는 ‘세계 기관지 천식 선도기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천식에 대한 국제적 진단·치료지침 제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3년엔 한국천식협회 설립을 주도해, 천식의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모지 상태의 국내 알레르기학 분야서 그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산이 좋아 산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산행(山行)은 단순한 취미 활동, 그 이상이다. 국내의 명산은 말할 것도 없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칼라파타르, 중국 쓰쿠냔산 등 해외의 고봉들을 두루 등정했다. 젊었을 때는 인수봉 등 암벽타기에도 매료돼 한가닥 외줄에 생명을 걸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서울대교구 가톨릭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아나필락시스 쇼크란 특정 물질에 접촉한 뒤 즉시 또는 수분 이내에 기도폐색으로 인한 호흡곤란, 저혈압, 피부 두드러기, 복통 등의 증상이 생기는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이다. 역사적으로 BC 2640년 이집트의 파라오가 말벌에 쏘인 뒤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초엔 디프테리아나 파상풍 치료제에 대한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문제가 됐으며, ‘페니실린 쇼크’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개미나 벌 등 곤충에 물렸거나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직후 가장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때로는 견과류, 딸기, 날계란 등을 먹은 뒤에 나타나며, 운동 도중 생기기도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체력장이 행해지던 시절엔 오래 달리기를 하던 학생이 종종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쇼크에 빠져 문제가 됐다. 이를 ‘운동 유발성 아나필락시스’라 한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즉각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하므로 사실상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쇼크가 발생하자마자 병원 응급실로 옮겨 에피네프린을 주사하는 것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 않다. 기도폐색이 생긴 경우 환자는 응급실로 옮기는 도중 사망하기 일쑤다.

따라서 과거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경험했던 사람이나 알레르기로 인한 혈관부종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물질에 아나필락시스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내 그 물질에 접촉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응급용 에피네프린 주사기를 항상 휴대하고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료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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