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운-'newsbank'의 여행 페이지<강원도 남부편>

6.25도 비켜간 백두대간 속 거대한 협곡

백두대간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덕풍계곡은 아직 무사하다.2용소 절벽지대.신앙처럼 아슬아슬하게 이곳을 지나면 산꼭대기 응봉산까지 무공해 자연이 이어진다. 강원도 삼척시와 경북 울진군의 경계를 아우르는 응봉산(998.5 ) 북서쪽에는 산악인이나 알 만한 깊은 계곡이 3개 있다. 문지골, 용소골, 보리골이라 한다. 그 중 용소골은 덕풍계곡에서 응봉산으로 오르는 계곡 트레킹과 등산을 겸할 수 있는 훌륭한 골짜기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암 절벽,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와 폭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비가 오면 순간적으로 급류가 형성되는 좁고 깊은 계곡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덕풍에서 용소골을 지나 응봉산 너머 울진 덕구온천에 이르는 덕풍계곡 트레킹 15km.

덕풍마을은 산으로 에워싸였다. 이 계곡 외에 경북 봉화 석포에서 40리에 이르는 험난한 석개재를 넘어 가던 고갯길이 또 다른 유일한 통로이다. 덕풍엔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정감록에는 임진왜란 때부터 피난지로 알려진 곳으로 나와 있고 6·25전쟁도 『언제 전쟁 났었나』 하던 오지마을이다. 또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이 가뭄과 흉년으로 종자가 귀해지면 찾아가서 구하라던 「삼풍(풍곡, 삼방, 덕풍)」지 가운데 하나다. 덕풍계곡과 용소골에 자라는 적송, 황장목은 궁궐 재목으로 쓰였다. 얼마 전 삼척시에서 계곡 초입 6㎞를 개발해 다리도 놓고 차도를 닦아 원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출렁다리는 없어졌다. 계곡 내에 다섯개나 새로 놓은 다리에는 「모두 버려야 갈 수 있다」는 버릿교, 「부추가 많이 나는 곳」이라 부추밭교, 「칼등처럼 모가 나고 갈라져 있다」 하여 칼등모리교 등 재미난 이름들이 붙어 있다.

외통나무에서 벌어진 물장구 전쟁! 서울에서 6시간을 달려 닿은 계곡, 칠흑 같은 밤이다. 덕풍으로 이동하는 동안 산천어와 버들치가 사는 계곡 풍광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대신 차창을 파고드는 산개구리 합창소리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룻밤 신세를 질 덕풍리 이희철 이장댁에 이르니 모닥불 빨갛게 핀 마당은 먼저 온 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여장을 풀고 여행 친구들과 소주 한잔에 담소를 나눈다. 마을 뒤편 미루나무 꼭대기 위 하늘에서는 하얀 달이 구름 속으로 들락날락한다. 새소리에 깨어나 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 용소골로 향했다. 문지골 계류와 만나는 지점을 지나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전 같으면 바짓가랑이를 적셔야 할 개울, 철다리 덕에 편하게 통과했다. 물깊이를 알 수 없는 방축 소를 지나 20분 가량 오르자 물빛 시커먼 제1용소가 나타난다. 무시무시한 폭포 소리에 접근을 시도하는 속인들을 겁먹게 하는 곳이다. 오른쪽 절벽지대를 줄 하나에 매달려 간신히 통과할 때는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다. 아예 길이 없는 골짜기를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경사면을 넘고 물길 이편저편으로 건너뛰기를 반복하며 1㎞ 정도 오르면 자일과 등반장비 없이는 못 올라가는 제2용소가 설악의 비룡폭포보다 더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굉음을 토해내는 폭포 오른쪽 절벽지대 위로 사람 하나 겨우 설 수 있는 바윗길이 나 있다. 멋지다고 발 아래를 함부로 내려다보려 하지 마시라. 산양들처럼 아슬아슬하게 절벽을 지나갈 적에 자칫 현기증에 중심이라도 잃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계곡에는 애당초 인간이 만든 길은 없었다. 누군가가 소의 깊이를 재려 돌을 매단 끈을 던져보았지만 휘돌아치는 물살이 하도 세차 끈은 중심 부위로 미치지도 못했다.

제2용소를 지나 약 한시간 정도 더 오르니 과거에 민가 몇 호가 있었다는 큰터골로 이어지는 작은 계곡이 왼쪽으로 열린다. 다시 암갈색 암반과 물길을 뚫고 특수부대원들처럼 서로 길을 열고 도와가며 길을 잇는다. 정오쯤에야 제법 너른 바위에 둘러앉아 요기를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서둘러 출발. 군데군데 일제가 벌목을 위해 양민들을 동원해 만든 산판 길 흔적과 물 속에 나뒹구는 협궤 레일토막이 보인다. 아니, 6·25도 비켜간 골짝까지 저들이 수탈을 자행했다는 말인가. 폭 10여 개울에 외통나무 다리가 놓여 있다. 먼저 건너간 사람들이 다리 위에 오른 일행에게 물을 뿌려댄다. 장난 속 공격과 이와 맞붙은 장난 속 비명소리가 계곡 가득 메아리쳤다.

한 모퉁이 또 돌아가니 거대한 협곡지대가 나타난다. 큰물이 질 때 상류에서 떠내려온 크고 작은 돌들이 암반을 깎아냈고, 그 누적된 침식이 이렇게 인공수로처럼 좁고 깊은 골과 웅덩이를 만들어놨다. 드디어 왼편으로 작은당귀골로 이어지는 표시가 나왔다. 제3용소 바로 못 미처이다. 이제야 절반을 온 셈. 작은당귀골을 따라 희미한 왼쪽 길로 올라붙는다. 오른쪽에 좁지만 제법 긴 폭포가 이어지고 계곡 측면을 거슬러 길은 점차 가파라진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시간 반 정도 오르니 응봉산 정상이 코 앞이다. 탁트인 능선에 선 두 그루 고사목이 바쁜 발걸음을 붙든다.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용소골과 덕풍쪽 저지대, 맞은편 묘봉, 중봉으로 이어지는 겹겹의 땅과 파란 하늘이 바로 눈 앞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드디어 응봉산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보여준 것이다. 해발 998.5 정상에는 군부대에서 만든 거대한 비석이 고압적으로 서 있다.

▷가는길 ①태백방면:38번국도 태백→38번국도 통리방면→427번지방도 풍곡방면→모전 지나 2㎞지점 다리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직진 풍곡초등학교 기사식당 앞 개울가에 주차장.

②삼척방면:동해안 7번국도 원덕읍 재산 476번지방도로 풍곡리 삼풍주유소 바로 앞 다리 건너 좌회전 풍곡초등학교.

▷현지교통:①태백-가곡간 1시간 간격 운행 (40분 소요) ②도계-통리간 20분 간격 운행 (30분 소요) ③통리-가곡간 40분 간격 운행 (35분 소요)

▷등반구간:덕풍마을→용소골→응봉산→덕구온천 (15km·10시간) ▷숙박:①계곡 입구 모로쇠농원:(033)572-4424 ②이희철 이장:572-7378 ③가곡휴양림

▷야영장:풍곡초등학교를 지나 포장도로를 타고 2㎞ 전진하면 휴양림 입구. 야영장은 입구에서 비포장도로로 5분거리 왼편에 위치.

▷포인트:경북 울진군 서면과 강원 삼척 가곡면과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응봉산(998.5m) 서북쪽 사면에 10여㎞에 걸쳐 뻗쳐 있는 전국 제일의 계곡 트레킹 코스. 제3용소까지 이르는 용소골에 있는 깊이를 알수 없는 소와 아름다운 폭포,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내는 미관은 금강산 내금강을 방불케 한다.

▷주변관광지:동활계곡 (신리-풍곡 사이 계곡), 가곡자연휴양림, 호산 해수욕장(원덕), 응봉산, 신리너와집(민속유물), 미인폭포(통리역 1㎞ 동쪽 위치. 대로변에서 100M 내려가 주차하고 계곡 아랫방향으로 500M 작은길따라 걸어내려가면 작은 암자가 나오고 50M 더내려가면 된다.) 등.

자료/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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